에우다이모니아

Posted by YuGeekLab on June 7, 2017

에우다이모니아

written by Aristoteles


요약 :


모든 것의 목표는 최상의 좋음이다. 그러면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행복이다. 그러나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르다. 쾌락이 행복인 삶은 짐승같은 삶이라 여겨질 수 있다. 명예가 행복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사실은 탁월성을 더 우선적인 목표로 세운다. 하지만 탁월성 또한 불안한데 탁월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조용히 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행복하다고 하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서 좋음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하는 행위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행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좋음일 것이다. 목적은 많으므로 완전한 목적이 가장 최상의 좋음이다. 완전함이란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 때문에 선택되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이 가장 완전한 목적이라고 생각된다. 자족의 관점에서도 행복은 완전한 좋음이다. 자족이란 그 자체만으로 삶을 선택할 만한 것으로 만들고 아무런 부족함 없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젠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해보자. 인간에게도 기능이 있을 것이고 기능 안에 좋음과 잘함이 들어있을 것이다. 인간의 고유한 기능은 이성적 활동의 삶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인간의 삶을 일종의 삶으로 간주하고 이 삶이란 이성을 동반한 정신의 활동과 행위로 간주한다. 훌륭한 사람은 이러한 정신의 활동과 행위를 잘 그리고 훌륭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능은 자신이 지닌 고유한 탁월성에 따라 완성될 수 있다. 결국 인간의 좋음은 탁월성에 따른 정신의 활동이다. 그리고 이 좋음은 완전한 삶 안에 있다.

탁월성에 위한 행위는 탁월성에 속하기 때문에 행복은 탁월성이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탁월성의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탁월성의 사용에 있다. 탁월성의 상태에 있더라도 아무런 좋은 것도 이루어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또한 외적인 여러 가지 좋은 것들을 필요로 한다. 이런 까닭에 어떤 사람들은 행운을 행복이라고 여기기도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탁월성을 행복으로 여긴다.

행복은 완전한 탁월성과 완전한 삶을 필요로 한다.

느낀점 :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는 논리적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행복을 생각하면 우리는 살면서 전혀 행복해질 수 없는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의 조건에 완전한 삶을 끼어 넣었다. 우리는 완전한 삶을 살기 전까진 행복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살면서 불운을 겪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과거에 잘나갔던 이상민 씨도 빛더미에 앉는 불행을 겪었다. 하지만 여전히 빛을 갚아나가는 상황에서도 그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렇듯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논리적이지만 살면서 행복을 말하는 우리를 거짓말쟁이로 만든다.

질문 :


1.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완전한 삶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완전한 삶을 살기 전까지 행복을 말할 수 없는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따르면 그렇다. 우리는 완전한 삶을 살기 전까지 행복을 말할 수 없다. 내가 나의 행복을 말할 때 나는 아직 완전한 삶을 살지 않았으므로 내가 말한 행복은 거짓이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은 죽은 사람이 행복했는지 행복하지 않았는지 평가하는 기준으로 적합하지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겐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2. 행운은 행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