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이웃을 사랑하기 어려운가

Posted by YuGeekLab on May 31, 2017

우리는 왜 이웃을 사랑하기 어려운가

written by Sigmund Freud


요약 :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은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린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이웃을 내 가족과 동등하게 대한다면 그것은 내 가족에게 부당한 처사이다. 이웃의 입장에서도 전 세계의 사람이 자신을 사랑한다면 각자의 사랑은 아주 조금밖에 안 될 것이다. 이는 전혀 이성적이지 않다. 낯선 사람은 내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내 적개심과 증오까지도 받아 마땅하다.

인간은 공격적인 동물이다. 문명은 인간의 공격본능을 제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라는 이상적인 명령이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성적 이익보다 본능적 열정이 강하기 때문에 이러한 노력은 별로 많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문명을 비판해서는 안된다. 갈등과 경쟁은 분명 필수 불가결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인류를 악에서 구할 길을 발견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사유재산을 폐지해도 공격 본능이 이용하는 도구 중 하나를 제거했을 뿐이지 공격 본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 본성의 결코 파괴할 수 없는 특징인 공격본능은 문명의 새로운 발달 방향을 따라갈 것이다.

공격 본능을 발산할 수 있는 대상이 남아있는 한, 상당수의 사람들을 사랑으로 단결시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인접한 공동체끼리 반목하는 것은 공격적 성향을 비교적 해롭지 않고 편리하게 만족시키는 방법이고, 그 덕택에 공동체 구성원들이 쉽게 단결할 수 있다.

문명이 인간의 본능에 제약을 가한다면 인간은 불행해진다. 문명인은 본능을 억제하면서 약간의 불행과 약간의 안전을 얻었다. 문명의 본질 속에는 문명을 개혁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굴복하지 않는 장애가 존재한다.

느낀점 :


평화는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세계의 안전에 기여한 사람들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북한과 적대관계를 형성하는 대신 햇볕 정책을 통해 세계의 평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로이트는 문명이 약간의 불행을 얻으면서 약간의 안전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세계가 평화를 일구려는 노력은 모두 우리의 공격 본능을 억제하는 불행을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니 나는 프로이트가 전쟁광인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프로이트는 평화주의자였단다.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프로이트는 평화를 추구하는 것 또한 인간의 본능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을 추구하는 것과 동시에 인간의 본능을 억제하는 행위가 된다.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행복하면서도 불행한 일인 것이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니 행복은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이 이해가 갔다.

질문 :


1. 왜 올림픽을 여는 것일까?

올림픽은 세계인의 우의 증진이라는 세계 화합의 성격을 띤다. 하지만 올림픽은 공격 본능 표출을 통해 애국심 증진과 단합에 기여하기도 한다. 자신의 나라와 경기하는 나라는 자신의 적이 되며, 사람들은 타국에 대해 공격 본능을 강하게 표출한다. 이는 반대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끈끈한 결합을 야기한다. 이러한 효과 때문에 세계 각국의 나라들은 스포츠 인재 육성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기도 한다.

2. 우리는 평화를 일군 사람에게는 상을 주지만 전쟁을 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지 않는다. 왜 그럴까?

우리는 평화를 추구하려는 노력을 통해 약간의 불행을 통해 인류 전체의 안전을 얻는다. 그러나 전쟁을, 즉 공격 본능을 표출하는 일은 잠깐의 쾌락을 얻을 수 있으나 인류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다. 문명은 영원히 행복해지고 싶어한다. 그를 위해 약간의 불행을 얻는 방법을 택한다. 따라서 문명은 평화를 지키려는 노력에 훨씬 더 좋은 가치를 두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