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언명령

Posted by YuGeekLab on May 2, 2017

정언명령

written by Immanuel Kant


요약 :


절대적으로 선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선한 의지밖에 없다. 권력, 부, 존경, 건강, 행복과 같은 자질들도 행위의 전체 원칙을 바로잡아 보편적인 목적에 맞게 만드는 선한 의지가 없다면, 사람들에게 자만심과 오만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선한 의지는 누군가가 행복을 누릴 만한 자격을 얻기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 자체임이 분명하다.

선한 의지는 그것의 유용성이나 결과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 선하다. 선한 의지는 보석의 경우처럼 자신의 완전한 가치를 자기 안에 갖고 있는 것으로서 그 자체로 빛날 것이다.

가언적 명령은 목적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명령법이다. 정언적 명령법은 목적에 관계없이 어떤 행위를 필연적으로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명령법이다.

모든 실천적 법칙은 어떤 가능한 행위를 선한 것으로 표상하며, 따라서 이성에 근거하여 행위하는 주체에게 이 행위를 필연적인 것으로 표상한다. 따라서 모든 명령법은 어떤 의미에서든 선한 의지의 원칙에 따라 필연적인 행위를 규정하는 공식들이다. 여기서 그 행위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써 선하다면 그 명령법은 가언적이고 그 행위가 그 자체로 선하고 따라서 이성을 따르는 의지에 있어서 그 의지의 원칙으로서 필연적인 것으로 제시된다면 그 명령법은 정언적이다.

가언적 명령법의 경우 명령법의 조건이 주어지기까지는 그것이 무엇을 포함하게 될지 미리 알지 못한다. 정언적 명령법의 경우 그것이 무엇을 포함할지를 바로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준칙과 보편적 법칙의 일치의 필연성이다.

그러므로 정언적 명령법은 단 하나뿐인데, 그 준칙을 통해서 네가 그것을 동시에 보편적인 법칙이 될 것을 원할 수 있는 그런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는 것이다.

의무에 관한 모든 명령법이 하나의 명령법에서 도출된다면, 최소한 우리가 의무라는 개념을 통해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리고 이 개념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보여줄 수 있다.

의무에 관한 보편적인 명령법은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도 있다. 마치 네 행위의 준칙이 네 의지에 의해 보편적인 자연법칙이 되어야 할 것처럼 그렇게 행위하라.

나에 대한 의무를 보자. 자살이 자신의 의무를 거스르는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에 대해 나의 준칙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생명 연장이 삶의 안락보다는 불행을 가져오리라 예상된다면 삶을 단축한다는 것이다. 이 준칙이 보편적인 자연법칙이 될 수 있을까? 사람들은 감정은 삶을 촉진하는 것을 본분으로 삼고 있는데, 감정에 의해 삶이 파괴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면 이러한 자연은 스스로에게 모순된다. 따라서 모든 의무의 최상위 원칙에 위배된다.

다른 인간에 대한 의무를 보자. 나는 돈을 빌려도 갚지 못한다. 하지만 거짓말을 해서 돈을 빌리려고 한다. 이때 행위 준칙은 이렇다. 돈이 궁하다고 여겨지면 돈을 빌릴 것이며, 갚을 수 없다고 해도 갚을 것이라고 약속할 것이다. 이때 나의 준칙이 보편적인 법칙이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게 된다면 누구든지 약속을 믿지 않을 것이고, 약속을 헛된 것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도 의무의 최상위 원칙에 위배된다.

완전한 의무를 보자. 그는 재능이 있으나 자신의 재능을 갈고 닦기보단 즐거움을 좇는다. 이 준칙으로 인해 자연의 보편법칙이 훼손되지 않을 것이지만, 그는 이 준칙이 보편적 자연법칙으로서 우리 안에 심어져 있기를 원할 수 없다. 그의 모든 능력이 다양한 목적을 위해 쓰이도록 주어져 있는 한, 이성적인 존재로서 그는 자기가 가진 모든 능력이 발전되기를 필연적으로 바라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의무를 보자. 나는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서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지 않을 것이고 다만 그를 도울 마음이 없을 뿐이다. 이런 준칙이 보편적 자연 법칙이 되더라도 인류는 잘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곧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는데 자신이 도움을 원할 때는 자신이 세운 자연 법칙에 의해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의무는 정언적 명령법으로만 표현될 수 있을 뿐 가언적 명령법으로 표현되지 않음을 밝혔고, 모든 의무의 원칙을 포함해야만 하는 정언적 명령법의 내용을 모든 경우에 사용되도록 분명하게 제시했다.

일반적으로 모든 이성적인 존재는 목적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지 의지가 마음대로 사용하는 수단으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모든 행위에 있어서 언제나 목적으로 작용해야한다.

인격은 우리의 행위의 결과로서 우리에 대해서 가치를 갖는 주관적인 목적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인 객관적인 목적이다.

최상의 실천적인 법칙이 있어야 한다면, 인간의 의지와 관련해서는 정언적 명령법이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목적 그 자체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필연적으로 목적이 되는 것의 표상으로부터 의지의 객관적인 원칙을 형성하고, 그리하여 보편적인 실천 법칙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성적인 본성은 목적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원칙은 주관적인 것과 동시에 객관적이다. 따라서 최상의 실천적인 근거이므로 의지의 모든 법칙이 이것에서 도출될 수 있다.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어떤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결코 한낱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고,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도록 그렇게 행위하라.

느낀점 :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것을 해낸 칸트를 존경한다. 솔직히 난 이 글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철학 용어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 더 공부해서 칸트의 정언명령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칸트의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질문 :


1. 한 아이의 엄마가 아이에게 “낯선 어른에게 인사해라.” 라고 말했다. 칸트의 입장에서 이는 옳은 것일까? 그른 것일까?

그르다. 낯선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잘보임으로써 후에 있을 인간 관계에 도움이 되거나 무언가 이익을 얻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바라보는 행위이므로 낯선 사람에게 인사라는 행위는 칸트의 입장에서 그른 것이다.

2. 칸트의 인간 자체를 목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